가정폭력으로 집에서 나와 거리에 사는 ‘여성 홈리스’

2018 홈리스 추모제 기획기사② 여성 홈리스

홈리스 추모제 추모팀 | 기사입력 2018/12/28 [14:57]

가정폭력으로 집에서 나와 거리에 사는 ‘여성 홈리스’

2018 홈리스 추모제 기획기사② 여성 홈리스

홈리스 추모제 추모팀 | 입력 : 2018/12/28 [14:57]

인권지킴이 활동을 위해 용산역을 찾은 어느 밤, 한 여성 홈리스가 자신의 짐을 바닥에 잔뜩 풀어둔 채 물건을 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할까 싶어 그에게 다가서려 했을 때, 그는 불안과 두려움이 담긴 시선을 보내며 나를 경계했다. 그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눈빛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 있던 그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홈리스추모제 기획단 여성팀은 거리, 시설, 쪽방, 고시원에 살았거나, 현재 거주하고 있는 18명의 여성 홈리스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홈리스와 마주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단일한 모습이기 쉽다. 그러나 홈리스라는 조건이 같더라도 젠더, 장애 여부, 나이 등에 따라 처한 환경과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르다. 여성 홈리스의 경우 홈리스 상태에 처하게 된 원인뿐만 아니라 홈리스 상태에서 겪는 어려움, 필요한 서비스가 남성의 그것과는 상이하다. 그렇기에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들의 삶의 궤적과 이들을 둘러싼 조건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여성 홈리스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며 “노숙인 자체를 안 좋게 보지 말고 왜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들어왔는지 봐 달라.”고 요청한다. 이 지면을 빌려 우리가 만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여러분에게 전한다.

 

▲ 대합실에 머물고 있는 한 여성홈리스. 여성임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사진=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제공>

 

집이 되지 못한 집

“밖에서 밤을 보내는 것보다, 맞는 게 무서워요. 두려워요.”

“지금도 가끔 노숙해요. 때리니까 안 맞으려고, 나 진짜 노숙 많이 했어요.”

“어릴 적에 아빠가 술만 드시면 많이 때려가지고 몇 번 가출을 했었고, 다시 들어가도 또 맞으니까 갈 곳이 없잖아요. 갈 곳이 없어서 ○○역에 가게 됐어요.”

대다수의 여성 홈리스는 아버지와 남편에 의한 가정폭력 때문에 집을 나와야 했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습관이 되어버린 남편의 매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맞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참아야 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좋은 배우자가 아니어서 그런 걸까, 자신을 학대한 적도 있다. 2016년 경찰청에서 발표한 가정폭력 피해자 4만 5,453명 중 74.4%인 3만 3,818명이 여성이었다는 점, 가정폭력이 과소 신고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정 내 많은 여성이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상 가족’은 절대적으로 소중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되도록 가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경찰은 가정 내에서 해결하라며 가해자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사회는 가해자와의 분리를 선택한 피해 여성을 유별난 사람 취급한다. 폭력 상황에서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가해자가 있는 집을 떠나는 일이다. 탈가정 후 지원체계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가해자 이외의 다른 자원이 부재한 여성은 거리로 향할 수밖에 없다. 가정폭력과 가정폭력에 둔감한 사회가 여성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여성 홈리스들은 ‘거리 생활을 한다는 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으로 대상화된 채 거리에 설 때 끊임없이 물리적, 성적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노숙 생활을 하면서 같이 모텔에 가자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고, 다른 여성 홈리스가 강간당하는 걸 목격한 적도 있었다. 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맞은 뒤론, 옆에 남성이 누우면 겁이 나서 도망가야만 했다.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서 머리를 잘랐다니까. 왜냐? 안 달려들잖아.”

“지금은 제 집(지원주택)이고 하니까 안정됐지만, 거리 나갈 때는 정말 무서웠고, 두려웠고, 남자들이 위협할까 봐 너무 무서워서 도망만 다니고, 그냥 혼자 다니거나 아니면 롯데리아에 있으면, 여자분 있으면 그 뒤쪽에 앉아있거나 그렇게 생활을 했어요.”

이들은 입을 모아 남성들의 시선과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여성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재 여성 홈리스를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곳은 서울을 포함해 6개 광역지자체뿐이고, 이외의 지역은 어떤 여성 홈리스 지원체계도 갖추고 있지 않다.

 

여성 거리 홈리스를 위한 일시보호시설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에만 있지만, 홈리스 밀집 지역과는 멀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밀집 지역의 경우 남성 홈리스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일시보호시설의 일부 공간에 여성을 위한 응급보호방을 운영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상시적인 위협에 노출된 여성이, 이용자 대부분이 남성인 공간을 자유롭게 접근하거나 그곳에서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 사람이 많은 고속터미널 대합실에서 휴식하는 여성홈리스와 아웃리치 상담원. <사진=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 홈리스, 이제는 말해야 한다

 

2001년부터 매년 동짓날을 기해 열리는 ‘홈리스 추모제’는 거리, 시설, 비주택 등지에서 거주하다 사망한 홈리스를 추모하고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자리다. 올해 처음으로 홈리스 추모제에선 ‘여성 홈리스’ 의제를 별도로 다룬다. 우리가 만난 여성 홈리스들은 사회에 이렇게 요구한다.

“편히 잘 수 있고 기본이 해결될 수 있는 장소, 공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꿈이 있다면 안정적이게 일자리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하고 일단 뭔가 좀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 회복이 필요한 것 같아.”

“교육도 받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공부를 할 수 있으면 공부를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보고”

지금껏 홈리스 문제는 실직으로 인한 남성 생계부양자의 문제로 다뤄졌다. 이 때문에 가시화되거나 설명되지 않았던 여성 홈리스는 홈리스 논의에서 배제되어 왔다. 혹자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숨기를 선택해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오독한 말이다.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안전한 가정과 거리를 만들어야 하며, 여성홈리스를 위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성들이 사회를 신뢰할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나와 구조를 요청할 수도 없다. 다시금 질문한다. 여성에게 국가와 가족은 무엇인가? 이들의 안전한 삶과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는,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편히, 자신감을 회복하고, 안정적으로, 공부하며” 살고 싶은 여성 홈리스들이 지금 여기,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은 '2018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 함께하고 있는 '홈리스행동'의 자원교사 은기님이 작성하였습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비마이너>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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