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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무엇인가? 극단 예그린, "살짜기 옵서예"?(1)
변시지 화백의 '난무' , '이대로 가는 길'
기사입력: 2017/12/03 [08:51]  최종편집: 시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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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민 기자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 ,

 

제주행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방향을 선회하며 비행기 왼쪽 창에 비친 제주앞바다 외딴 섬 하나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비행기 창에 뚫어진 구멍 하나하나의 의미와 함께, “비행기의 창문은 모두 세 개의 투명한 아크릴 판으로 되어있는데, 이중 구멍은 중간 판에만 있다고 전한 녀석을 기억하며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을 생각한다.

 

사드 유도탄(미쓸. missile) 여파로 중국인이 떠난 제주는 한산했다. 100 번이 넘는 제주 방문이었지만 이번 방문은 목적을 갖고 방문한 첫 번째 제주방문이다. 공항에서 가까운 대접국수로 요기를 하고 서귀포로 달려간다. 우성 변시지 화백의 그림 두 점이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10년 간 전시되었다가 올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100호 크기의 그림 두 점 중 한 작품은 이대로 가는 길이고, 또 다른 작품은 난무이다.

 

변시지 화백의 작품, “난무”,그림

 

▲  변시지 화백의 그림 '난무' , 폭풍의 화가 고 변시지 화백의 작품 두 점이 10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아 왔다

 

이번 제주 방문을 계획한 것은 우연히 문뜩 떠오른 하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 작품이요?” , “ 그건 살짜기 옵서에 아네요?” 대부분의 연극인들과 예술인 그리고 일반인들 중 식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모두 이구동성으로 살짜기 옵서에를 지목한다. 그러면서 또 동시에 그것 말고 다른 작품이 최초입니까하는 물음을 기자에게 다시 던진다. 결국 그들은 이 대답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자료]

“19661026일 시민회관에서 <살짜기 옵서예>가 막을 올려 29일까지 공연하게 된다. 이 뮤지컬은 엄청난 성황을 이루어, 마지막 날에는 입장권이 매진되어 개막 3시간 전엔 5배 비싼 가격으로 암표가 거래될 정도였다. 이 공연은 3백만원의 제작비, 출연자 300명이라는 한국 무대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웠고, 관객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살짜기 옵서예>는 한국적 뮤지컬의 토질이 발견됐으며, 2주 이상 롱런하여 성공, 7회 공연에 15천명을 기록한 것, '본격적인 성격의 한국제 뮤지컬'로서, 뮤지컬의 가능성이 확인됐으며, 특히 최창권의 음악은 뮤지컬 음악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창작 뮤지컬로 평가받는 <살짜기 옵서예>는 여러 면에서 대중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한 작품이었으며, 1966년 공연계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 공연의 성공은 극적 줄거리와 음악, 춤이 조화를 이룬 작품성에서 기인했다. 실로 이 작품은 예그린의 대표작이고, 동시에 뮤지컬의 토착화 가능성을 입증한 첫번째 창작 뮤지컬이었다.

 

재공연

1967222~ 26, 서울시민회관, 예그린, 임영웅 연출

197111~ 6, 서울시민회관, 예그린, 임성남 연출

1978106~ 10, 세종문화회관, 미리내, 표재형 연출

 

평론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 뮤지컬사에서 보면 초기 작품에 속한다. 프로덕션도 3번에 걸쳤고 관객도 가장 많이 동원하였다. 웬만한 한국인이면 <살짜기 옵서예>의 테마를 흥얼거릴 수 있으며, 의상실, 술집 등등의 상호가 되었을 만큼 <살짜기 옵서예>는 유명해졌다. 그러나 후속타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이유 가운데는 실험적인 작은 형태의 공연이 배제되고 대형무대에만 집착했다는 점과 정책적 소재에 지나치게 매달려 관객의 호응을 사지 못했던 점들이 두드러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뮤지컬에의 열망과 기대는 지금 대단히 커져 있으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서민적이며 민주적인 소재와 주제, 평이한 형식과 컬러풀한 무대, 그리고 박진성 등등은 뮤지컬의 특성으로서 현대관객들에게 유치하거나 저급하지 않은 오락성을 제공한다. 다만 우리 뮤지컬들은 음악, 무용, 연극이 균형있게 하나로서 융합·조화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어서 뮤지컬의 참맛은 아직까지 창조되지 못한 느낌이다.

 

<살짜기 옵서예>의 성공적 요인은 (1) 스토리의 간결성, 친밀성 (2) 코믹하고 아름다운 한국적 색채 (3) 쉽게 부를 수 있는 선률과 한국의 색채가 서구식 표현으로 조화가 된 점 (4)스타의 적절한 기용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의경, 뮤지컬센터 미리내 창단 3주년 기념공연 프로그램) 

 

실험적인 예그린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다음과 같은 신문평을 받았다.

 

 

배비장전을 뮤지컬로 꾸민 예그린의 再起出演은 뮤지컬 코메디를 한국에 정착시키려는 극단의 오랜 숙원을 다른 측면에서 앞질러 실현시킨 무대였다. 이번 공연은 한국적인 折哀式 뮤지컬이 우리 풍토에서 가능하다는 시사를 던져 주었다’ (동아일보)

 

템포가 빨라 12장의 무대가 어느새 끝났는지 몰랐다 고전을 이런 감상으로 다룬다면 뮤지컬은 앞날이 있을 것 같다. 예그린이 이 공연을 통해 우리 고전을 현대화하는 가능성을 개척해 놓았다.’ (경향신문)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애당초 예그린 악단의 이념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기 어려우나, 우선 미국 뮤지컬풍의 감미로운 선율이 청중들의 귀를 간지럽힐만 하다’ (신아일보)

(참고 : 1978년 공연 프로그램)

 

 

변시지 화백의 작품, “이대로 가는 길”, 그림

 

▲ ©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작품,  이대로 가는 길

 

그렇다. 자세히 살펴보면 실험적인 예그린 뮤지컬” ,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창작 뮤지컬로 평가받는 <살짜기 옵서예>”, “뮤지컬의 토착화 가능성을 입증한 첫번째 창작 뮤지컬이었다.” 라고 모두 단서가 붙어있다. 그것을 보고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은 극단 예그린살짜기 옵서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직 이 작품을 연출하신 임영웅 연출에게 이 작품이 한국 최초의 뮤지컬 작품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거나 찾아본 적이 없다.

 

기자가 제주를 가서 폭풍의 화가변시지 화백의 작품을 만날 겸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던져줄, 당시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을 맡으신 분의 발자취를 따랐다.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 태동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늦더위가 왔나보다. 이 여름, 제주에서 45일의 휴가를 마치고, 귀로의 비행기 속에서 살짝 잠이 들었다.

 

이여도 여차!.... 이여도 여차! ....,

 

제주 민요가 아련히 나의 망막 속에 환청으로 들려왔다.“

   (계속)

2편으로 연재하며 2편에서 한국최초의 뮤지컬은 무엇이다 라고 밝히면서 당시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하신 분의 성함과 출처를 밝혀드리겠습니다. 반론을 제기하실 분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글과 자료는 webmaster@lullu.net   또는 lullu@sisakorea.kr  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건설적인 논의가 되길 기대합니다.

[시사코리아=권종민 기자] lullu@sisakorea.kr , webmaster@lull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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