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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 한국연극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극단 백수광부, 공연 '백수광부들' 해답을 찾다
기사입력: 2017/11/25 [15:09]  최종편집: 시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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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민 기자

극단 백수광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성열 연출가(55)가 재단법인 국립극단 신임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 임기는 3년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1월 10일 이성열 연출가를 신임 예술감독으로 임명하면서 “이 감독은 연극에 대한 폭넓은 전문 지식과 경험, 연출 역량과 행정 경험도 두루 갖추고 있다”며 “향후 국립극단 중장기 발전 방안 마련, 연극계 현장과의 소통 강화와 화합, 한국 연극의 발전과 저변 확대 등 국립극단이 처한 현안을 잘 해결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 연극 백수광부들, 극단 백수광부 , 한국연극 문제의 대안을 제시한다

 

 

국내에서 손꼽는 연극평론가 안치운 교수는 그의 저서 『연극 반연극 비연극』'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연극을 진단했다.

 

1. 한국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영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자극적이고 과다 포장된 가공물에 비해 연극이 설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예전에 비해 공연 수는 늘어났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끌지 못하였다.자생할 수 없어 지원 제도가 뒤를 받쳐주지만 여전히 한국 연극의 미래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2. 공연평이 아닌 연극판 전체를 반성하다

 

과거에 나온 비평서들이 주로 공연 하나하나를 평한 것에 그쳤다면 『연극 반연극 비연극』은 한국 연극판 전체에 대해 반성하고 비평하였다. 

 

한국 연극에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가늠하는 큰 조건은 소비의 양에 달려 있다. 흥행만 되면 같은 작품이 계속 복제되어 만들어진다. 연극이 양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예 지원 제도 덕분이다. 공연 수가 늘어나면서 연극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해졌고, 많은 극단이 생겨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질적 수준은 양적 증가에 비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공연은 많은데 볼 만한 공연과 기록 평가할 작품의 수는 적다는 얘기다. 

 

연극을 만드는 이들은 연극을 올리기 전 치열한 고민을 덜 하게 되고, 공연 결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창작자들은 덜 우울해하고,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욕구는 점점 줄어들었다. 창작자들에게 질문이 없다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창작자가 열정을 가지기보다 유행을 좇게 되면서 획일화된 연극이 병적으로 판을 친다. 결국 공연을 통해 작가를 찾고, 작가가 만든 세계를 함께하는 문화적 절차들이 거의 생략되고 만다. 

 

현실이 썩었다고 하면서 아무 말이나 하고 네가 틀렸다고 말의 논리적 방법 대신 발길질하는 연극들, 존재만 있고 부재는 없는 날것의 상징들이 난무하는 강요의 연극들이다. 이런 연극들은 관객에게 추론하는 쾌감을 주지 못한다. 관객이 자발적인 주체가 될 수 없게 만든다. 설득하는 노력이 배제된 연극은 강제하는 연극을 낳을 뿐이다. 관객을 인정하지 않고 내 자장, 내 영향력 아래 놓으려고만 하는 행위인 폭력은 날것의 소산이다.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성찰이 빠지고 앞만 보고 가는 날것의 연극이 판을 친다.

 

3. 극단은 곧 연극 정신이다

 

극단이란 단순히 연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가 아니다. 극단이란 공동체 정신, 몸과 자연이라는 생명의 정신, 연극 작가라는 탁월한 사유의 정신을 담아낸다. 극단은 쉴새없이 움직여야 한다. 극단이 안정이란 제도화를 거부하면서 얻는 덕목은 자유, 욕망, 인간성이다. 극단이 없어져도 극단 정신은 옮겨가고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극단들은 걷지 않고, 멈춰 있다. 동숭동에 머무는 극단은 동숭동이란 장소의 아우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새롭게 나타나는 극단 정신을 기대하기 어렵고 연극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4. 연극 비평을 비평하다

 

우리나라 연극에는 예술 작품으로서 연극과 연극 예술가를 승인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승인이 없다는 것은 작가와 작품이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도 연극의 장에 들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연극 작가와 작품에 대한 승인은 바로 연극 비평이 큰 몫을 맡는다. 연극 비평이 이론과 글을 지녀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연극 비평은 제소리를 내지 못한다. 오늘날 연극 비평은 자족적이다. 철학적 입장이 담겨 있지 않다. 연극 철학으로서 비평이 담론이 되지 못하는 것은 장르의 해체, 연극 동네의 위축, 좋은 공연의 부재 탓만은 아니다. 연극 비평가의 게으름과 오만 때문이기도 하다. 

 

연극 비평이 연극에 대한 아무런 소명도 없고 연극 동네의 주문도 없으며, 아무도 연극 비평을 믿어주지도 않는 지금 역설적으로 연극 비평에서 철학의 문제가 제기된다. 다시 연극 이론이 필요하다. 이론과 실제를 분배하는 교수법은 매우 위험하다. 이론은 실제를, 실제는 이론을 철학해야 한다. 연극 이론과 실제의 결별은 연극의 불균형을 낳고, 연극 바깥에서는 연극의 몰이해를 자초하게 된다. 연극 작가들은 이론을 통하여 더욱 정교하고 치밀하게 말과 행위, 이론과 실제를 공부하고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론과 실제의 틈새를 메워줄 거멀못 역할을 하는 것이 곧 공연이다.

 

우리나라 연극의 질서와 원리, 이치를 위해서 존재하는 이론이 있어야만 연극하는 이들은 철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이 바깥에서 인정받기위해서는 연극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사유가 공유되어야 한다. 결국 새로운 미디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연극의 미래를 위하여 비평이 주목해야 할 것은 연극이란 매체의 변화, 매체로서의 말, 매체로서의 몸, 새로운 매체로 가능한 다른 연극적 표현 등이다. 또한 연극의 언어, 비평의 언어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이로써 비평가는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비평 철학의 최대값이다.

 

5. 연극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다

 

몸은 배우와 관객을 막론하고, 사회속에서 생출되고 길들여지고 교육되고 코드화된 언어다. 새로운 매체란 몸을 대체시키면서 편리함을 내세우는 반면 몸을 소외시킨다. 마임은 몸 이외에 어떠한 매체로도 대체될 수 없는 장르 그러니까 매체를 생산하고 결정하는 어떠한 메커니즘도 마임에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 장르의 원형 보존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연극 자체로 돌아가기 위해 몸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몸을 떠난 연극과 춤은 상상할 수 없다. 

 

연극은 이제 삶과 자연 환경을 전제로 한 미래의 전망을 지녀야 한다. 문제는 연극의 생태 윤리적인 역할과 올바른 이해에 있다. 연극이 자연과 같은 그리움과 원시림의 터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연극 본연의 모습이다.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백수광부들' 공연은 이러한 "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극작에서 공연까지 무대에 올려져 관객과 만나게 된 귀한 연극이다.  평론가 안치운이 그의 저서 『연극 반연극 비연극』에서 지적한 많은 문제점들을 시사코리아 문화부는 이 공연을 통해 해결했다고 평가했었다. 편집된 영상이지만 이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진단 된 한국연극의 문제점에 대한 모범적 대안으로 제시되는 공연자료이기에 끝까지 꼭 감상해줄 것을 기대한다.

 

[시사코리아=권종민 기자] lullu@sisakorea.kr  ,  webmaster@lullu.net 

 

 

동영상 크게 보기 바로가기https://www.youtube.com/watch?v=3fHA42fWL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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