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한일] 김대중의 일본 인식... 진보-보수에 답하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선언 이끌어 낸 장본인... 한일 우호의 길 재조명

김재순 기자 | 기사입력 2019/08/13 [22:56]

[격랑의 한일] 김대중의 일본 인식... 진보-보수에 답하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선언 이끌어 낸 장본인... 한일 우호의 길 재조명

김재순 기자 | 입력 : 2019/08/13 [22:56]

▲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시사코리아db)     © 김재순 기자


한일관계가 극한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선언이다.

 

이 선언을 이끌어 내어 한일관계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그 중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리한다.

 

최근 국가적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대일본 외교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식이 13일 김대중도서관측이 최초 공개하는 자료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 중인 1998년 10월 김대중-오부치선언을 통해서 한일관계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여 한일관계에 있어 가장 모범적이고 훌륭한 시기를 개척했던 인물.

 


그 뿐만 아니라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 이전에도 일본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1973년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납치사건과 1980년 사형선고 등 김대중이 겪어야 했던 고난에 있어 일본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김대중은 일본의 정부, 정당, 시민사회 등과 긴밀한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김대중은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가장 영향력을 갖는 인물로 평가된다.

 

현재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김대중의 대일 인식에 대한 관심이 보수-진보 진영 모두에서 고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에 있어 김대중의 지혜와 정치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사 자료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관장 박명림 교수)이 201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이하여 1948년부터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 이전 시기의 내용 총 2015건의 내용을 편집해서 출간하는 김대중전집 2부 20권의 내용 일부다.

 

◆ 1950년대 자료를 통해서 본 국교정상화 이전의 대일 인식

 

1950년대 청년 김대중은 시사평론가로 활발한 기고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 사실은 그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김대중은 1950년대 언론에 게재된 자신의 기고문을 스크랩해서 정리한 노트를 남겼으며 이 노트에 수록된 전체 내용은 이 번에 모두 최초로 공개된다. 여기에 일본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 칼럼이 몇 건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1953년 10월 2일에 발표된 <한일우호의 길>(상)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이다.

 

오늘날 악독한 공산침략에 직면하여 전 자유진영이 그의 생존을 위해서 굳게 단결하여야 할 차제(此際)에 지리적으로 순치(脣齒)의 관계에 있는 같은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겸하여 앞으로 조직될 태평양반공동맹에 있어서도 같이 중추적 역활을 하여야 할 한일 양국의 반목 대립은 아주(亞洲) 반공세력의 강화는 물론 전기(前記) 반공동맹의 추진에도 치명적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단적으로 말해서 금일의 절박한 노예와 멸망의 공산침략으로부터 양국 민족을 구하기 위하야는 일절의 난관을 극복하여 양국민의 우호단합이 엄숙히 요청되는 것이다. … 현재의 방만무도한 태도마저 눈감은 채 악수의 손을 내민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 이를 불허함은 물론 양국의 우호협조 그 자체를 위하여서도 결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바는 못 되는 것이다. 한일국교의 새로운 판국에 처해서 우리는 단호히 일본의 옳지 못한 태도의 시정을 얻으므로서만이 진실로 영원한 양국 친선의 튼튼한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것이다.

 

1953년 10월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이며 전투행위가 중지되었을 뿐 동북아 지역의 극단적인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던 시기였다. 김대중은 냉전 시기 한국의 안보와 국익적 관점에서 한일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있는 사과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양국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양국 국민 사이에서의 우호와 친선이 이뤄져야만 한일관계의 기초가 튼튼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4년-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문제를 두고 이뤄진 논쟁 과정에서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의 대일외교 방식과 논리를 비판하면서도 안보와 국익적 관점에서 한일국교정상화 자체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했었다. 이와 같은 김대중의 균협잡힌 시각은 1950년대부터 확인된다.

 

◆ 1973년 일본 망명 투쟁 시기에서 나타난 대일 인식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할 때 신병치료차 일본에 머물고 있던 김대중은 망명 투쟁을 하기로 결심했다. 김대중은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납치될 때까지 10개월여 동안 일본과 미국을 오가면서 반유신 투쟁을 전개하였다. 망명 투쟁 시기 김대중의 글과 인터뷰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번에 모두 전집에 수록되어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자료에는 이 당시 김대중의 대일인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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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김대중은 이 때 더욱 섬세하면서도 심화된 인식을 보여준다. 이 시기 김대중의 활동 내용을 요약하면 ‘일본 주류 사회의 대한국 인식과 정책에 대해서 비판함과 동시에 일본의 태도 전환을 이뤄내기 위한 이론과 전략을 제시한다’로 볼 수 있다. 이것을 두 가지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1973년 4월 10일 친필로 작성한 메모에서 일본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일본(日本)의 경제력(經濟力) 팽창(膨脹) - 재군비(再軍備). 핵무장(核武裝) - 대국야욕(大國野慾)
그들은 지배(支配)냐 종속(從屬)밖에 모른다) 연결(連結)될 것인가?

 

여기서 보듯 김대중은 일본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일본 주류의 대한국 인식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김대중은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일본의 태도 전환을 위한 실천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특히 일본 망명 투쟁 시기 자료는 김대중이 일본 정부, 정치권, 지식인, 국민들을 향해서 언급한 내용이 많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이전에는 한국에서 대일본 관계에 대해서 언급했다고 한다면 이 시기에는 일본 언론에 기고하거나 인터뷰를 하여 일본을 향해서 한일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에 대한 비판, 충고, 대안 등이 담겨 있으며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서 일본이 인식하고 실천해야 하는 바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일본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함과 동시에 일본의 장점도 함께 존중해주면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방식은 냉철하면서도 지혜로운 외교 전략을 보여주며 훗날 김대중의 대일외교 인식과 전략의 방향을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일본 <주오고론(中央公論)> 1973년 1월호에 게재된 기고문 : 조국 한국의 비통한 현실 ? 독재정치의 도미노적 파급(祖?韓?の悲痛な現???裁政治のドミノ的波及) 은 그 당시 김대중의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일본판에의 서문 끝부분     ©


나는 과거 일본과 우리나라 간에 있었던 불행한 역사는 일단 놔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의 황폐화를 딛고 일어서 지금의 일본 국가를 건설한 일본민족의 끈기와 그 생명력, 그리고 성과에 대해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 또 일본이 지금 아시아에서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서 중국과 함께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실, 그리고 그렇다면 일본은 미국이 범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마음으로부터 바라마지 않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은 이미 그러한 징조를 보이고 있다. 나는 약간의 견해를 일본국민들에게 밝히고, 이것이 장래의 진로 결정에 조그마한 참고라도 되기를 바란다.


 일본은 아시아 각국과 접촉할 때 현존하는 정권을 상대로 협력하는 경우에서도 그 근본정신은 어디까지나 “상대는 정권이 아니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고 바라는 국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두 번째로 경제협력은 어디까지나 상대국 국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끔 철저한 방향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세 번째로 아시아의 평화와 전쟁위기 해소를 위해 미, 일, 중, 소 4대국에 의한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일체의 분쟁과 대립을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근절할 수 있도록 솔선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일본의 안보와 방위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로 일본은 이미 소련 및 중국과의 국교를 정상화했고 각종 교류를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실적을 활용해 아직 중국, 소련 양국과 국교를 맺지 못한 각 나라들을 중개해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 아시아에서 공산권과 자유 제국간의 집단적 평화공존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다섯 번째로 일본은 아시아 각국에서의 민주주의 정착 및 발전이야말로 아시아의 미래를 결정짓는 기본 요건임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자면, 가칭 ‘아시아 민주공동체’를 조직하여 각국의 의회민주주의, 지방자치, 민주적 시민운동, 그리고 언론 자유의 발전과 올바른 경제협력, 각국 민간의 이해와 선의를 증대시키는 문화교류를 위한 공동의 방안과 협조, 이것들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선두에 나서 진행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아시아 각 국민은 복잡한 눈빛으로 일본을 쳐다보고 있다. 일본은 자기들만 부자가 되면 된다고 생각할 뿐, 같이 살아가지 못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아시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일본의 올바른 비전 확립은 ‘대국일본’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한다.

 

여기서 보면 김대중은 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일본의 건설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김대중은 일본의 전략적인 가치를 중시하면서 일본이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인하기 위하여 일본을 상대로 일본 국가 전략에 대해서 직접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에서의 김대중 구명 운동 이후, 김대중의 대일 인식

 

김대중은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한국으로 강제송환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두 차례의 한일결착에서 김대중의 인권은 한일 양국정부에 의해서 훼손되었으며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한 사형선고 과정에서도 한일관계 문제가 연관되었다.

 

▲ 현재의 한일 양국 국가 지도자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에서는 김대중 구명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아시아 민주주의, 인권, 평화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이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통한 한일관계 발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한일연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는 김대중의 인식과 같은 것으로서 한일 양국 사이에서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통한 연대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 번에 최초로 공개하는 1983년『옥중서신』일본어판 서문 친필 초안을 보면 위와 같은 김대중의 인식을 알 수 있다.

 

세계(世界)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일본국민(日本國民)이 뛰어나게 나를 위해 걱정하고 투쟁(鬪爭)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否認)할 이가 없으리라. 이는 그 지리적(地理的) 역사적(歷史的) 관계(關係)로 보나 납치사건(拉致事件) 이래(以來)의 사정(事情)으로 보아서 어쩌면 자연(自然)스러운 결과(結果)였을 것이다.


일본(日本)에서 나를 위하여 수백만(數百萬)의 서명운동(署名運動)이 벌어지고 곳곳에서 데몬스트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나는 얼마나 크게 고무(鼓舞)되고 감사(感謝)를 했던가! 일본(日本)의 모든 벗들은 내가 옥중생활(獄中生活)을 하는 동안 언제나 마음속에서 같이 있었다. … 이와 같이 몇 겹으로 닫혀진 한일(韓日) 양국민(兩國民) 사이의 문(門)을 뜻있는 동지(同志)들과의 협력(協力)으로 하로속(速)히 열어 재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世代)만이라도 서로 이해(理解)와 협력(協力) 속에 화목(和睦)한 이웃으로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나는 한국(韓國) 사람 중 누구보다도 일본(日本)의 여러분과 특별(特別)한 인연(因緣)으로 인(因)하여 일본(日本)인과 서로 마음의 공감대(共感帶)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 보잘 것 없는 책(冊)이 그러한 목적(目的)을 위(爲)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기서 보듯 김대중은 한일 양국 사이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통한 연대를 중시하면서 이 기반 위에서 한일관계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김대중은 일본 내부에 다양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중시하면서 진정한 한일연대를 지향하는 일본 내 양심적 세력들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이들이 일본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하여 동북아시아 평화에 있어 일본이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한 것이다. 양국 국민,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소통과 교류를 통한 한일관계의 발전을 지향하는 김대중의 인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다. 김대중은 이와 같은 대일 인식 속에서 대일본 외교의 전략과 정책을 구상했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당시 1998년 김대중-오부치선언을 이끌어 내어 한일관계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현재 한일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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