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의 성공비결, 창업주 유일한을 알면 보인다

이일화 기자 | 기사입력 2019/01/07 [12:23]

유한양행의 성공비결, 창업주 유일한을 알면 보인다

이일화 기자 | 입력 : 2019/01/07 [12:23]

유한양행이 지난해 14천억 원 규모의 폐암 신약 후보 레이저티닙기술 수출에 이어 미국 제약기업 길리어드(Gilead Science)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신약 후보물질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유한양행은 7일 미국 제약기업 길리어드(Gilead Science)와 비알콜성 지방간 질환(NASH) 치료 신약후보물질의 라이선스 및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에 유한양행은 계약금으로 미화 1500만 달러(168억원)와 개발 및 매출 마일스톤 기술료 미화 77000만 달러(8654억원)등 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를 받는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NASH)은 간에 지방 축적과 염증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 진행성 질환이다. NASH 환자는 말기 간질환, 간암 및 간 이식과 같은 심각한 결과로 발전할 수 있고 사망 위험성 또한 높다. 현재 NASH 환자의 치료 방법은 매우 제한적인 실정이다. 길리어드 CSO 겸 연구개발 책임자인 존 맥허치슨(John McHutchison)박사는 이번 협력은 유한양행과 오랜 파트너십에 기초해 이뤄졌으며 진행된 섬유증을 갖는 NASH 환자의 새로운 치료법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길리어드가 현재 진행 중인 연구 프로그램을 보완하고 유한양행 연구팀과 협력해 환자의 미충족 분야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한양행의 계속된 신약 수출이 성공하자 다시한번 회사의 창업 철학과 유일한 박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전 재산’과 ‘기업’을 사회에 환원하며 세상을 떠났다.  

 

조명받는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는 일제강점기 대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세웠다. 창업 정신을 기반으로 유한양행은 가장 좋은 상품의 생산을 주요한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이를 계승받아 회사를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이정희 사장의 경영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26년 미국에서 대학공부를 마치고 사업까지 승승장구하던 유일한 박사는 독립운동가 서재필을 찾아간다. 서재필은 유일한 박사에게 잎사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새겨진 목각판을 건네며 그대가 한국인임을 절대 잊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그해 12월 청년은 서울 종로에 한 제약회사를 설립한다.

 

이 제약회사는 유한양행이 되고, 서재필이 건낸 목각판은 유한양행의 상표가 된다.

 

유일한 박사는 1895년 평양에서 재봉틀 장사로 자수성가한 상인 유기연과 김확실 사이에 5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유기연은 미국 감리교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19059세에 불과하던 아들 유일한을 유학 보낸다.

 

1909년 유일한은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독립군을 기르기 위해 만든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성인이 되었을 때는 재미교포들의 항일집회에 참여해 연설을 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사업차 고국에 귀국했을 때 일본 경찰에 붙잡히기도 한다.

 

미시간 주립대학교에 입학한 유일한 박사는 그곳에서 고국에서 일어난 3·1운동 소식을 듣게 된다. 또한 이 같은 소식은 유일한 박사뿐 아니라 미국에 거주하던 동포들에게 전해져 재미한인전체대표회의를 개최해 세계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알릴 대규모 독립선언대회를 계획했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유일한 박사는 19194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서재필 주도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가해 서재필·이승만·조병옥 등 미주 독립운동가들을 돕는다.

 

그리고 유일한 박사는 1926년 돌연 조국으로 돌아와 제약회사를 세울 결심을 한다. 중국 북간도에서 우리 민족들이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모습을 보고 사업을 하기로 한 것.

 

1933년 유한양행은 그동안 미국에서 수입해야 했던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을 개발해 판매했으며, 중국계 미국인 의사였던 부인 호미리 여사도 중일전쟁으로 조선의 의약품 부족이 극에 달하자, 소아과 병원을 개업해 저렴한 가격으로 환자들을 돌봤다.

 

그리고 1971311일 유일한 박사는 타계한다. 유언장에는 그가 소유했던 유한양행 주식 14941주 전부를 재단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신탁기금에 기증하도록 했다. 이미 그는 생전에 유한양행 총 주식의 40%를 각종 공익재단에 기증한 데 이어 개인 소유 주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기증했다.

 

평사원 출신 중 CEO 선발

유한양행은 지난 1969년 주주총회에서 유일한 박사가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부터 유한양행 CEO는 평사원 출신에서 선임한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라는 유일한 박사의 신념대로 전문경영인 체제는 아직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현재 1500여 명의 임직원 중 유일한 박사의 특수관계인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같은 경영을 통해 유한양행이 가진 것은 공동체의식이다. 현재 유한양행은 1975년 노조 설립 이후 단 한차례의 노사분규가 없다. 유한양행의 노사관계는 독특하기까지 하다. 사내에서는 흔히 노사라는 표현대신 노노(勞勞)관계라고 말한다. 경영진부터 말단사원까지 모두가 노동자, 동등한 회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원이든 아니든 유한양행의 모든 직원은 회사의 주주이자 종업원이라는 의식이 공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창업주가 선택한 종업원 지주제가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견고히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제도적 역할을 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보다도 20~30년을 앞서간 유한양행의 종업원 지주제와 지배구조는 1970년대에 이르러 그 꽃을 피우게 된다. 1958년에 공로주 배분 및 자사주 취득 허용 등을 통해 사실상의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한 유한양행은 1973년에는 완성된 형태의 사원지주제를 채택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4년에는 당시 977명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사원이자 주주가 된다. 유한양행이 명실상부하게 사원들이 경영하는 공익기업의 기틀을 다지게 된 것이다. 이런 유일한의 기업가정신을 계승해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시킨 인물이 이정희 사장이다. 평소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박사라는 소책자를 손수 엮어 사람들에게 선물할 정도로 창업주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을 평생 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발전시켜 왔다.

 

유한양행의 한 인사는 이 사장은 40년 가까운 회사 생활을 통해 유한맨이라는 것을 늘 대내외에 자랑스럽게 말했다면서 사장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회사 창업정신과 창업주의 활동에 늘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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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흥균 2019/01/07 [13:22] 수정 | 삭제
  • ^^유한양행, 성실하고 튼튼한 초석으로 세계에서 최고 멋진 기업으로 우뚝쏟아 대한민국의 위상을 다시한번 드높여 주어가는군요. 정말 훌륭하신 창업주님의 그 고귀한 정신이 영원하길 기원하며 다른기업들로 주욱 번지어 탄탄한 대한민국 의 강인함이 세계만방 에서 모범적으로 빛나길 기원합니다. 멋진 우리의 기업 유한양행..! 노고에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짝짝..... 전주에서 김흥균 꾸벅.
  • 참사람 2019/01/07 [12:57] 수정 | 삭제
  • 저도 존경하는 유일한 박사님 유한양행 파이팅
  • 어부 2019/01/07 [12:39] 수정 | 삭제
  • 훌륭한 기업인! 존경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유일한 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