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겨울 북풍, 115명 실종자 만들다

성혜미 기자 | 기사입력 2018/12/04 [12:45]

1987년 겨울 북풍, 115명 실종자 만들다

성혜미 기자 | 입력 : 2018/12/04 [12:45]

 

▲ 1987년 12월15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 <사진=시사코리아 자료사진>

 

1987년은 들뜬 해였다. 1216일에 있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군부 정권을 끝낼 수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고, 한 해 뒤 열리는 88서울올림픽에 대한 성공적 개최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희망은 1129일 오후 25분에 산산조각난다. 이 시각 대한항공(KAL) 소속 858편 보잉 707기가 버마 안다만 해상에서 공중폭파해 추락하는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비행기에 탔던 20명의 승무원과 한국인 93, 외국인 2(인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총 115명이 실종됐다. 그리고 이 폭파는 김현희·김승일이라는 북파공작원이 ‘88올림픽 참가 신청 방해를 위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라는 김정일의 친필명령을 받고 저지른 테러라고 발표된다. 

<관련기사 : KAL858 폭발·실종, 사건은 이용되고 진실은 은폐됐다>

 

선거 전날 모습을 드러내다

115명의 실종을 낳은 대참사의 주범인 김현희가 입에 하얀 테이프를 붙인 채 수사관들에게 양팔을 붙들려 비행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이었다. 김승일이라는 70대 남성과 함께 경유지인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 김현희는 안기부의 추적으로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됐다. 김승일은 담배 필터 속에 숨겨둔 독약 앰플을 깨물어 즉사했고, 김현희는 치사량을 삼키기 전 담배를 빼앗겨 생존했다.

 

선거 전날 압송된 김현희와 관련해 정부는 바레인 당국으로부터 신병인도가 늦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이 사건이 대선 관련 이슈를 잠재우고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높인 것은 분명했다. 13일 치러진 선거는 16년만에 치러진 직접선거였고, 투표율은 89.2%을 기록했지만 여당 인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박정희·전두환에 이어 또 다시 군부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대선 9일 후인 1223일 김현희는 자신이 북파공작원이고, ‘88올림픽 참가 신청 방해를 위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라는 김정일의 친필명령을 받고 저지른 테러라고 밝혔다. 그리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다음해인 115일 이 사건을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의 소행으로 결론 내리며 이들이 여행자 휴대용품으로 위장한 라디오 시한폭탄(C4 350g)과 술로 가장한 액체폭발물(PLX 700cc)9시간 뒤에 폭파하도록 조작한 다음 비행기 선반 위에 두고 내렸다고 발표한다.

 

끊이지 않는 의혹들

115명의 실종자를 낳았지만 정부의 조사는 허점투성이였고 의혹은 불거졌다. 블랙박스나 기체 잔해는 물론이고 승객들의 유품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수색을 10일만에 중단했다.

 

또한 안기부는 김현희가 외국인이 탄 비행기는 국제적으로 시끄러워질 것을 우려, 노동자들만 탄 비행기를 노렸다고 발표했다. 테러 한 달 전 북한에 있었다는 김현희가 통상 출발 하루나 이틀 전 확정되는 승객명단을 어떻게 알았느냐 의혹이 불거졌다.

 

1972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회담에 참석한 남쪽 대표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소녀가 김현희라고 안기부는 밝혔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김승일의 부검 결과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북한정예공작원으로 알려졌지만 171cm46kg으로 위와 쓸개가 거의 절제돼 있었으며, 결핵균에 감염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김현희는 북한 사람이 아니며 폭파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일본 언론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서는 김현희 테러를 남한 군부정권의 자작극이라는 주장하기도 했다.

 

19903월 정부는 비행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식 결과 폭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발견된 잔해는 1995년에 고물상에 넘겨져 폐기처분 된다.

 

이와 관련해 실종자 가족회는 블랙박스나 유해 등 비행기 잔해가 발견되지 않은 점 정부조사단 조기 철수 및 대통령 선거 하루 전 범인 압송 김현희 증언에만 의존한 초동수사의 부실함 등을 주장하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드러난 진실과 드러나지 않은 진실

실종자 가족회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건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20052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조작됐을 것으로 보이는 7대 우선조사 대상 사건의 하나로 칼(KAL)기 폭파사건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2007년 진실위에서 최종 발표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조사위는 보고서를 통해 (KAL)기 폭파사건은 북파공작원에 의한 것이 맞으며, 안기부가 대선정국에서 여당이던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1216일 대선 이전 수사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국내외 및 대북홍보계획을 수립하는 등 일명 무지개 공작을 실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이 시작되기 전 김현희의 구제 활용방안을 검토하는 등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정권 차원에서 사면을 추진한 사실도 밝혀냈다.

 

하지만 조사위는 김현희를 직접 조사하지 않아 반쪽자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초반에는 진실위의 활동을 두고 국정원 내부에서 선배들 물먹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 자연히 국정원을 통한 김씨와의 접촉이 쉽지 않았고 김씨 역시 끝까지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는 조사위 조사관의 언론 인터뷰는 칼(KAL)기 폭파사건의 진실이 전부 밝혀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현재 김현희는 대구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북지방경찰청 보안국 소속 6명의 경호원에 의해 24시간 경호를 받는다. 과거 그는 전국을 다니며 안보강연을 하고 신앙간증을 했다.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1991),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1992)라는 두 권의 에세이집도 출간했다.

 

반면 실종자 가족위는 31년째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남편과 자식을 잃고 긴 시간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서 정부는 칼(KAL)기와 관련한 물증들을 모두 폐기하고 방치하는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직무 유기라고 말한다.

 

최근 실종자 가족위는 사고해역 인근에서 칼(KAL)기의 잔해로 추정되는 비행기의 착륙 바퀴 부품을 발견했다. 현재 국토교통부 항공사고조사팀은 관련 조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위는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면서 새로운 잔해가 발견된 만큼 정부가 나서서 재수색과 수사를 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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