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는 투자분쟁산업이다'

성혜미 기자 | 기사입력 2018/11/02 [12:50]

'ISD는 투자분쟁산업이다'

성혜미 기자 | 입력 : 2018/11/02 [12:50]

 

우려는 현실이 됐다. 총 7건의 중재·청구 금액만 6조8천억원.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던 ‘투자자-국가 간 중재’(ISD)가 정부를 상대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7억7000만 달러(8600억여 원) 피해를 봤다며 중재를 요청했다. 지난달에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 허위 공시를 금융감독원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아 손실을 보았다”면서 스위스의 승강기 업체 쉰들러 ISD를 제기했다. 심지어 최근 정부는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이란의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ISD에서 패소한 바 있다. 심리가 종료된 론스타와 취하된 하노칼의 ISD까지 합치면 지난 6년간 정부는 총 7건, 청구금액 6조원대의 ISD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ISD는 일반적으로 ‘외국의 투자자가 투자 대상 국가의 정책 등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투자자가 대상 국가를 국제기관에 제소할 수 있는 규정’으로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로, 국가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법으로 인한 투자자의 재산적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1966년 ‘국가와 다른 국가의 국민 간 투자분쟁 해결에 관한 협약’에 의해 도입된 ISD는 이른바 열강에서 자본선진국으로 변한 미국 등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투자 형태로 진출하면서 자국민들 보호를 위해 만들어 졌다고 설명하는 것이 적확하다. 당시 배타적 민족주의를 표방한 저개발국가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산을 몰수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자본투자를 통해 해외진출을 진행한 국가들은 “사법 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협정 당시 ISD를 포함시킨다. 실제 정보공유연대 IP Left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몇 년 전 필리핀정부는 독일항공사 Fraport가 제기한 2개의 ISD를 방어하는데 5800만 달러(약 600억원)를 썼다. 이는 12,500명의 교사 1년치 임금과 맞먹고 380만명의 어린이에게 결핵, 디프테리아, 폴리오와 같은 예방백신접종 비용과 맞먹고 공항을 2개 지을 수 있는 금액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1년에 경제위기에 대처하기위해 경제개혁프로그램을 하자 40건 이상의 소송을 당했다. 2008년 말까지 12건의 ISD에 대해 판정을 받은 결과 아르헨티나가 지급해야할 배상금은 11억 5천만 달러(약 1조 2천억 원)에 달했다. 이는 당시 아르헨티나의 15만 명의 교사나 10만 명의 의사의 연간 평균 임금과 맞먹는다.

 

▲ ISD의 구조적 문제도 있다. 정부와 투자자가 본격적인 중재 절차에 들어가면 양측이 합의 하에 중재인을 비롯해 중재 장소를 결정한다. 각각의 중재인들은 의장중재인을 선택하고 이들 3명이 중재판정부를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ISD는 이 과정에서 ‘투자분쟁산업’이란 비판을 받는다 <사진 = 무료이미지 사이트 픽사베이>   

 

장소 역시 이들의 합의로 결정된다. 가장 많이 선택되는 중재법원은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두 번째는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이다. 이 외에 헤이그에 있는 상설중재재판소(PCA),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이 있고, 파리에 있는 국제상업법원(ICC)과 스톡홀름상업법원(SCC)는 비즈니스기구로써 투자분쟁을 다룬다. 

 

문제는 이 과정이 ‘투자분쟁산업’이란 점이다.

 

정보공유연대 IP Left에 따르면 미국 로펌 King&Spalding은 과거 한 소송에서 의뢰인에게 배상금 1억 3300만달러의 80%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재자 또한 하루수당 3000달러(약 300만원)에 추가로 이동, 거주비를 받는다.

 

소송에서 진 쪽이 상대방의 법무비용을 항상 돌려주는 것은 아니다. 양자에게 재판, 행정비용을 각자 지불하라고 중재판정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이 말은 정부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납세자들은 돈을 내야한다는 뜻이다. Plasma Consortium 대 불가리아 소송에서 불가리아는 결국 사기라고 판결난 이 소송을 방어하는데 법무비용을 약 1300만달러(약 130억원)를 썼다.

 

하지만 중재판정부는 Plasma Consortium에게 불가리아의 법무비용 중 700만 달러만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불가리아는 이마저도 다 회수하지 못했다). 당시 불가리아는 간호사의 부족으로 인한 보건의료위기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돈이면 1796명 이상의 간호사들의 임금을 지불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노주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부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재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정부 정책이 사사건건 ISD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은 물론 사법주권까지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국제 중재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고, 해외 투자자들은 ISD를 새로운 경영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유럽 등지에서 ISD를 제한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는 만큼, ISD를 폐지하는 것은 현실성 있는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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