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간 돈만 되면 “다 팔아~”

끝없는 불경기에 장기매매 시장 나선 서민들

장혜진 | 기사입력 2008/11/28 [20:13]

신장, 간 돈만 되면 “다 팔아~”

끝없는 불경기에 장기매매 시장 나선 서민들

장혜진 | 입력 : 2008/11/28 [20:13]

국내 장기 대기자 2만여명 달해… 한해 이식자는 2천여명 불과
매도자들 상대로한 사기 행각, ‘벼룩의 간’ 빼먹는 악덕 브로커까지



끝날 줄 모르는 경기불황에 몸을 파는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껏 ‘몸을 파는’ 행위는 윤락업소 등에서 일하는 일부 여성들에게만 통용돼 왔던게 사실. 하지만 최근의 심각한 경제난은 그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곤궁자들에게 또 다른 수단을 통한 몸 팔기를 시도하게끔 하고 있다. 바로 불법장기매매다.
과거의 불법장기매매가 병원이나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 등에 붙여진 스티커를 매개로 소극적으로 행해진 것과 달리 최근에는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신체건강, 어떤 부위든 상관 없음’ 등의 적극적인 광고에 나선 이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거래가는 보통 신장이 3천만원, 간은 7천만원 가량. 하지만 장기매매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매도자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브로커들까지 판을 치고 있다.

사회의 음지에서 드문드문 일어나던 불법장기매매가 나날이 활성화돼 가고 있다.
사상 최악의 경기 불황에 전세 보증금을 빼고 살림살이를 전부 팔아도 생활비 마련에 허덕이는 신용불량자와 영세민 등이 이제는 장기판매까지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사이트 장기매매 판쳐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19살 남자입니다. 혈액형은 O형. 술이나 담배는 한번도 입에 댄 적 없습니다. 어떤 부위든 상관 없습니다”, “너무 힘든 상황이라 신장을 급히 팔아야 합니다. 도와주세요. 25살 B형 여자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장기를 팔려고 내놓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매도자들의 글 중에는 심지어 연체된 핸드폰 요금을 납부해야한다는 미성년자까지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6년부터 2008년 8월 간 사이버경찰청이 실시한 인터넷 사이트 모니터링 결과에 의하면 적발된 장기매매 관련 게시글은 총 3천22건으로 매도가 2천900여건, 매수 82건, 알선이 25건으로 집계됐다.
장기알선 사이트 등에서 통용되고 있는 부위별(?) 거래가는 신장이 3천만원, 간이 7천만원 가량으로 장기매도자와 브로커가 이를 절반씩 나눠갖게 된다.
하지만 현행법상 장기기증은 ‘순수 무상기증’만이 가능하며 유상매매의 경우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따라서 장기를 주고받거나 이를 알선하는 행위, 나아가 이를 약속하는 행위 전부 불법으로 처벌 받게 된다.
또한 전체 장기이식의 80%이상이 친족 간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금전이 오고 갈 가능성이 높은 타인과의 장기거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장기이식 승인 절차상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이에 매매자들은 브로커를 통해 본인 여부 확인 절차가 간소한 병원을 물색한 뒤 환자의 친척 중 나이대가 비슷하고 혈액형이 같은 사람을 찾아 신분증을 위조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본인 확인 인터뷰를 대비해 예상질문을 작성하고 연습까지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위치한 한 대형병원의 장기이식센터 코디네이터의 말에 의하면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장기기증 순수성 테스트’에서 브로커의 개입 사실이 드러나 경찰에 신원을 인도한 경우도 그 병원 내에서만 올해로 3건이 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고자 장기매매에 대한 별다른 제재가 없는 중국이나 필리핀으로 원정 수술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가 검증되지 않은 해외기관에서 수술을 받는 까닭에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시장에 내놓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무사히 장기를 팔아 돈을 받게 되는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장기매매 행위가 불법이라는 점을 악용해 신체검사비와 신분증, 위조비 등의 명목으로 장기매도자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잠적하는 브로커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법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다 검거된 브로커 사기 건수만도 최근 3개월간 5건에 달했다.
지난 9월 26일 대전충북경찰청에 검거돼 구속된 브로커 L씨의 경우 지난 6~8월 사이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장기매매 알선 스티커를 붙이고 이를 보고 전화한 16명을 상대로 조직검사비와 서류작성비 등의 명목으로 1인당 80~400만원씩 총 3천900만원을 편취했다.
경찰에 따르면 L씨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했던 버스운전기사 아버지와 시험 준비 자금을 충당하려고 했던 고시생 등 궁지에 몰린 절박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어느 온라인 사이트에 호소의 글을 올린 한 피해자는 “4천만원 가량의 빚과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암수술로 목돈이 필요했다”며 “도저히 방법이 없어 자살이라도 하려던 차에 기왕 죽느니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뭐든지 한번 해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브로커에게 500만원을 잃었다. 대책을 좀 가르쳐달라. 제발 경찰에 신고하지는 말아달라”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장기매매를 둘러싼 모든 행위가 전부 불법에 속한다는 것을 알기에 피해자들 대다수는 이처럼 보상은커녕 어디가서 딱히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매매를 둘러싼 수요와 공급

이 같은 불법장기매매가 나날이 성행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단지 경기불황 때문만은 아니다. 급전이 필요한 공급자들과 만성적인 장기부족 문제로 애태우고 있는 수요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
물론 불법장기매매 이외에도 순수기증을 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3년여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며 자신에게 맞는 장기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현재 국내 뇌사기증자의 숫자는 100만명당 3.1명으로 35.1명의 스페인과 25.5명의 미국에 비해 극히 저조한 상태다. 또한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임두성 한나라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9천600여명이던 지난 2003년과 비교해 올해는 지난 8월을 기준으로 이미 1만7천여명을 넘어섰다. 5년 사이 170%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반면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고작 1천800여명에 불과했다. 대기 도중 사망하는 환자 역시 매년 1천여명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만 해도 장기이식을 원하는 대기자 수가 한달 평균 500여명이나 된다. 하지만 정작 장기를 구해 수술에 들어가는 경우는 50여건에 불과하다”며 심각한 장기 부족 상태를 설명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각에서는 아예 장기매매를 합법화하거나 일정 인센티브를 제공해 장기기증을 활성화시키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10년 후 한국’의 저자이자 공병호경영연구소의 소장인 공병호 씨는 장기의 자유판매를 허용해 돈 없는 사람은 돈을 얻고 장기가 필요한 사람은 장기를 얻도록 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서울 송파구와 충남 천안시, 전북 전주시 등 3개 지자체는 장기기증자에게 최대 2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어 지난달 6일에는 경남 김해시 의회 제경록 의원 등 4명이 장기기증자에게 최대 1천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조례안의 대표 발의자인 제 의원은 심각한 장기 부족 현상으로 아까운 생명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 같은 위로금 상향 지급은 기증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부울경지역본부는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장기매매를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강한 반대 의사를 표하는 등 장기부족에 따른 문제와 불법매매 사이의 절충점을 찾지 못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5일 만난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한 관계자는 현재 순수 장기기증자에 대한 합법적 차원의 인센티브로 뇌사자에 한해 장제비와 의료비, 위로금 명목으로 120만원씩 360만원 가량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기의 무상기증을 원칙으로 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로 내년부터는 장제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대폭 축소할 방침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불법장기매매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그는 “솔직히 나 역시도 정작 내 가족이 장기가 없어 죽게 될 상황에 처한다면 불법장기매매의 유혹에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라며 “하지만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다. 일단 정치권 내에서 입법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장기매매 합법화에 찬성하고 있는 국회의원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단 장기 기증 활성화 운동과 함께 장기매도자의 80~90%가 검사비 30만원을 떼이는 사기를 당하고, 중국 등지로 원정 수술을 떠나는 이들의 많은 수가 잘못된 사후관리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 등 불법장기매매의 폐해를 널리 알리는데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한 매도자 중 일부는 간혹 이곳을 찾아와 도와달라며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순수 기증자 수 늘어나야

분명 현재로서는 순수 기증자의 수를 늘리는 것만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신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뿌리 깊은 유교 의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도배방지 이미지